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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가짜 출근’으로 시작한 계엄의 날…질책·고함 치다 새벽 5시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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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5-12-0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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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출발한 ‘가짜출근’ 의심 차량 행렬이 용산 대통령실 정문을 통과하고 있다. 경찰청 도시교통정보센터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 갈무리

국민에게 고통과 분노 만을 안겨준 자. 역사의 퇴행을 가져온 자. 능력이 안되는 자에게 절반의 국민이 속아서 위험한 칼을 안겨준 댓가가 무엇인지를 너무도 아프게 보여준 지난 3년 반의 윤석열의 시간. 다시는 속지 맙시다

2024년 12월3일 아침 8시52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들머리에는 검은색 스포츠실용차(SUV)들이 줄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행렬의 앞뒤에는 경찰 오토바이가 따라붙었다. 영락없는 대통령 행렬이었지만, 차 안에 대통령 윤석열은 없는 ‘가짜 출근’이었다.

윤석열이 실제 출근한 건 그로부터 50분이 지난 오전 9시42분이었다. 오전 11시10분 예정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1시간23분 앞둔 시각이었다. 정상회담과 공식 오찬이 모두 마무리된 건 오후 2시. 윤석열은 대통령실 5층 집무실로 이동했다. 한시간 남짓 뒤부터 대통령실 수석들의 보고가 오후 5시까지 이어졌다.

보고를 모두 받은 윤석열은 저녁 6시10분께 경호처장 박종준을 집무실로 불렀다. 윤석열은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을 대통령 안가로 19시까지 부르라”고 지시했다. 윤석열은 6시50분께 집무실을 나섰다. 비슷한 시각에 경호처 차장인 김성훈은 국방부 장관 김용현의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 윤석열이 집무실을 나섰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그 직후(저녁 6시54분) 김용현은 전직 정보사령관인 노상원의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 1분34초 동안 통화했다. 극비 사항인 대통령의 동선이 실시간으로 민간인 노상원에게까지 노출된 정황이다.

조지호와 김봉식은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건물 주차장에서 박종준을 만나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로 향했다. 박종준이 앞장서 문을 열고 들어간 안가 1층 방에는 윤석열과 김용현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내란 1·2인자는 저녁 7시15분께 13만 경찰의 수장과 수도 서울의 치안 책임자를 불러 앉혔다. 윤석열은 조지호와 김봉식에게 “오랜만이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시국에 대한 불만을 늘어놨다. 윤석열은 “탄핵이라든지, 특검이라든지, 예산과 관련된 내용, 종북 좌파와 관련된 내용”에 대한 말을 이어갔다. 아울러 “국회 등 여러곳에 계엄군이 출동”할 것이라며 “국회에 계엄군이 출동하면 경찰이 질서를 유지하고 계엄군에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김용현은 윤석열이 열변을 토하는 사이 조지호와 김봉식에게 종이를 한장씩 건넸다. 조지호가 받은 종이 첫줄에는 “2200 국회, 2300 민주당사”라고 적혔다. 아울러 “여론조사꽃”, “엠비시(MBC)”를 비롯해 10곳이 넘는 기관의 이름과 시간대가 기재됐다.

윤석열은 안가에서 나오면서 법무부 장관 박성재에게 바로(저녁 7시41분) 전화를 걸었다. 박성재는 당시 윤석열이 “아무 말 없이 그냥 들어오라고 했다”고 말한다. 윤석열은 집무실로 돌아온 뒤 저녁 8시께 수행실장 김정환에게 국무총리 한덕수,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법무부 장관 박성재, 외교부 장관 조태열, 통일부 장관 김영호, 국정원장 조태용을 호출하라고 했다. 윤석열은 이 무렵 한덕수와 조태열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었다. 한덕수에게는 저녁 8시 무렵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고 대통령실로 와라”, 조태열에게는 저녁 7시54분 “부인에게도 말하지 말고 지금 바로 용산으로 오라”고 말했다.

이들이 대통령실에 모두 모인 것은 밤 9시께다. 가장 늦게 도착한 조태열과 조태용이 집무실에 들어서자 윤석열과 한덕수·김용현·이상민·박성재·김영호가 자리에 있었다. 윤석열은 조태열에게 “비상계엄을 선포하려 한다”고 말했다. 조태열은 “70여년 간 대한민국이 쌓아온 모든 성취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만큼 엄청난 파장”을 언급하며 계엄을 만류했다. 윤석열은 화를 내며 “나 개인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냐. 법치주의를 누구보다 신봉하는 내가 오죽하면 이런 생각을 했겠나.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될 것이다”라고 반응했다. 이어 “이거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우리 와이프도 모른다. 비서실장도 모르고 수석도 모른다. 와이프가 굉장히 화낼 것 같다”라고 말한 뒤 밤 9시20분께 김용현을 제외한 이들을 집무실과 이어진 대접견실로 내보냈다.

집무실에 있던 윤석열은 대접견실로 나와 한덕수만 따로 불렀다. 이 자리에서 한덕수는 윤석열에게 국무회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윤석열은 김정환에게 국무위원 소집을 추가로 지시했다. 국무회의 정족수 11명이 채워진 시각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오영주가 대접견실에 도착한 밤 10시16분이었다. 김용현은 국무위원들에게 비상계엄 선포문을 나누어 줬다. 윤석열은 이 자리에서 “지금 이 계획을 바꾸면 모든 게 다 틀어진다. 이미 언론에 (대국민 담화 계획을) 다 발표했고,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대통령의 결단이다. 국무회의 심의를 했고 발표를 해야 하니 나는 간다”는 말을 남긴 뒤 브리핑룸으로 떠났다. 국무회의 개최 2분 만이었다. 밤 10시27분, 기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대접견실로 돌아온 윤석열은 “마실 것을 가져오라”고 한 뒤 “(비상계엄)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짐짓 여유를 보였다고 한다.

비상계엄 선포 뒤 윤석열은 부지런히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밤 10시53분 국가정보원 1차장 홍장원에게 전화를 걸어 “비상계엄 방송하는 것 봤지? 이번 기회에 싹 다 정리하라”고 했다. 국회로 출동한 군과 경찰을 지휘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윤석열은 밤 11시15분 조지호에게 전화해 “국회로 들어가는 국회의원들을 포고령 위반으로 전부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밤 11시17분에는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육군참모총장 박안수에게 전화해 “포고령 내용을 조지호에게 알려주라”고 했다. 윤석열은 비상계엄 이후 조지호에게 6차례 전화를 걸었는데, 모두 국회로 들어가는 국회의원을 체포하라는 지시였다.

윤석열은 밤 11시22분 국민의힘 원내대표 추경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상계엄이 보안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이어 밤 11시36분 국회로 출동한 육군특수전사령부의 사령관 곽종근에게 전화를 걸어 군 병력 이동상황을 확인했다. 당시 국회의원들은 비상계엄 해제를 위해 속속 국회의사당으로 모이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윤석열은 12월4일 0시31분 곽종근에게 전화해 “아직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다. 국회 안으로 빨리 들어가서 의사당 안에 있는 사람들 빨리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했다. 윤석열은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에게도 0시32분부터 4분 동안 3차례나 전화를 걸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서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채근했다.

국회는 새벽 1시3분 비상계엄 해제 결의요구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윤석열은 포기하지 않았다. 윤석열은 새벽 1시13분 이진우에게 전화해 “국회의원이 190명 들어왔다는데 실제로 190명이 들어왔다는 것은 확인도 안 되는 거다”라며 “해제됐다고 하더라도 내가 두번, 세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윤석열은 곧바로 합동참모본부 지하 3층에 있는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로 자리를 옮겼다. 결심지원실은 현역 군인 서열 1위인 합동참모의장의 중요한 결심을 돕는 공간이다.

새벽 1시17분 결심지원실에 들어선 윤석열은 “(국회에) 1천명은 보냈어야지. 이제 어떡할 거야”라며 김용현을 질책했다. 당시 결심지원실에 있던 군 관계자는 윤석열이 소리를 지르며 “국회의원부터 잡으라고 했는데” “핑계에 불과하다” “국회에서 의결했어도 새벽에 비상계엄을 재선포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국가안보실장 신원식과 대통령비서실장 정진석은 계엄 해제 이후 대통령이 군 작전을 지휘하는 결심지원실에 머무르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겼다. 두 사람은 새벽 1시49분 그곳에서 윤석열을 데리고 나왔다.

집무실로 돌아온 윤석열은 결국 새벽 4시27분 비상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이어 새벽 4시30분, 한덕수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은 공식적으로 해제됐다. 윤석열의 귀가는 새벽 5시께였다. 지각 출근으로 시작한 윤석열의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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